나의 이야기

[스크랩] 울님들~ 힘내세요. 화이팅 !

겟바위 2012. 1. 5. 20:53

여러분 힘내세요 화이팅 !  

김삿갓의 한시 감상
 

 

 

 

 

  

 

 

 

滿

 

 

 

西

김삿갓 칠언시


 

知未時八 安逝眠 (지미시팔 안서면
)

아침 8시 전에 편안히 죽은 듯 잠자고 있으면 

 

 

自知主人 何利吾 (자지주인 하리오)
스스로 대접 받는 주인 노릇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


 

女人思郞 一切到 (여인사랑 일체도)
여인이 남정네 사모하면, 모든 것 일체



絶頂滿喫 慾中慾 (절정만끽 욕중욕)
절정의 순간을 만끽하는데 이르니, 욕망 중에 으뜸이니라.



男子道理 無言歌 (남자도리 무언가)
도시 남자의 도리란 말없이 행위로 보여야 하거늘,



於理下與 八字歌 (어이하여 팔자가)
리에 따른다면 팔자 타령으로 그만이지만



岸西面逝 世又旅 (안서면서 세우려)
해지는 서녘 바다 떠나야 할 때 이 속세 여정 다시 걷고



飛我巨裸 王中王 (비아거라 왕중왕)
모든 것 벗어버리고 날아가니, 왕중왕이 되었도다.



김삿갓이 일생을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세상을 유람하다가 단천(端川) 고을에서
결혼을 한일이 있었다...젊은 청춘 남녀의
신혼 밤은 시간 시간마다 천금이 아닐수 없지않는가...

불이 꺼지고 천재시인과 미인이 함께 어울어졌으니
어찌 즐거움이야
이루 다 말할수 있겠는가...?

뜨거운 시간에 취해있었던 김삿갓이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불이나케 일어나서




불을 켜더니 실망의 표정을 지으면서 벼루에
먹을 갈고 그 좋은 명필로 일필휘지하니...






모심내활(毛深內闊) 필과타인(必過他人)
털이 깊고 안이 넓어 허전하니 필시 타인이 지나간 자취로다.
이렇게 써놓고 여전히 입맛만 다시면서
한 숨을 내쉬고 앉아 있었다...

신랑의 그러한 행동에 신부가 의아해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신랑이 일어나는 바람에

원앙금침에 홀로 남아 부끄러움에 감았던
눈을 삼며시 뜨고 김삿갓이 써놓은
화선지를 살펴보곤 고운 이마를 살짝
찌풀이듯 하더니

이불에 감싼 몸을 그대로 일으켜 세워
백옥같은 팔을 뻗어 붓을 잡더니
그대로 내려쓰기 시작했다.

후원황률불봉탁(後園黃栗不蜂坼)
계변양유불우장(溪邊楊柳不雨長)





뒷동산의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않아도 저절로 자라니라.....



글을 마친 신부는 방긋 웃더니 제자리로
돌아가 눈을 사르르 감고 누었다.

신부가 써놓은 글을 본 김삿갓은 잠시
풀렸던 흥이 다시 샘솟으며 신부를 끌어안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자기의 처녀성을 의심하는 글월도
글월 이거니와 이에
응답하는 글 역시문학적으로 표현해

 
놓았으니 유머도 이쯤 되면
단순히 음담패설이라고
하지는못할 것이로다.
 

          

▼ 계곡 들머리 오른편에 명국환이 부른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가 있다.

   

     

▼ 바윗틈을 돌아 옥동천으로 흐르기 직전의 김삿갓계곡. 여름철 피서객으로 붐빈다.  

     

   
▼ 옛날 이마을에서 태어난 아기장수가 힘 자랑을 하기 위해 집채만한 이 바위를 들어서
작은바위 위에다 올려놓았다 해서 '든돌'이라 하고 마을을 '든돌마을'이라 부른다.
   

   
▼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평생을 떠돌아다닌 방랑시인 김삿갓.
그의 일가가 살던 집터와 묘소가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1992년이다.
   

  
김삿갓(1807~1863. 본명 金炳淵, 호 蘭皐)이 다섯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선천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군에게 항복하였고,
이듬해 난이 평정된 후 김익순은 처형당하고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영월군 와석리 깊은 산중에 숨어살게 되었다.
   

   
김병연이 20세 되던 1827년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할아버지의 행적을
모르고 있던 그는 김익순의 죄상을 비난하는 글을 지어 장원급제를 하게된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숨겨왔던 집안내력을 듣게 되었고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과
조부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탄 자신을 용서할 수 가 없었다.
하늘이 부끄러워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던 그는
아내와 아이와 어머니를 가슴아픈 눈물로 뒤로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으니...
  
     
▼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채 세상을 비웃고 인간사를 꼬집으며 정처없이 방랑하던 그는
57세 때 전남 화순땅에서 객사하여 차남이 이곳 와석리 노루목에 모셨다 한다.
   



 

    

 

 

   

   
▼ 계곡이 크지는 않지만 절벽처럼 높이 솟은 바위산과 맑은 물로 마음을 잡는다.   
我向靑山去  綠水爾何來 (내 청산을 향해 가거늘 녹수야 너는 어디서 오느냐)
  
출처 : 중년의 향기와 멋
글쓴이 : 김선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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